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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개봉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데어 월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 는 미국 자본주의의 태동기, 인간 욕망과 고립, 종교와 자본의 충돌을 서사적으로 풀어낸 문제작이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전설적인 연기와 더불어, 철학적 주제의식과 미장센의 극한 미학으로 현대 영화사에 깊이 새겨진 작품이다. 이 글에서는 영화의 구조적 완성도, 주요 인물의 심리 변화, 그리고 국내외 평단의 수용과 해석을 통해, 『데어 월 비 블러드』의 명작성을 다각도로 조명해보고자 한다.

 

데어 월 비 블러드 영화이미지

 

 

영화 구조와 줄거리 분석

『데어 월 비 블러드』는 1898년에서 시작해 1927년까지의 시간을 다룬다. 영화는 대사 없이 시작된다. 단단한 바위를 곡괭이로 깨고 은을 채굴하는 다니엘 플레인뷰의 모습이 몇 분간 무성 장면으로 전개되며, 캐릭터의 집요함과 원시적인 생존 본능이 시각적으로 제시된다. 이 초반 장면은 단순한 오프닝이 아니라, 이 인물이 삶을 어떻게 대하는지, 세계와 어떻게 대면하는지를 상징한다.

 

영화는 형식상 전통적인 삼막 구조를 따르지만, 전개 방식은 비선형적이고 상징적이다. 초반부에서는 다니엘이 석유 사업에 눈을 뜨고, 점차 기업가로 성장해가는 과정이 묘사된다. 그러나 그 성장은 외부와의 조화가 아닌 철저한 배제와 독점, 그리고 심리적 고립을 수반한다. 다니엘은 아들을 사업 파트너로 이용하면서 ‘가족 기업’ 이미지를 조작하고, 주민들을 설득해 땅을 사들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불신과 본능적인 경쟁심이 자리잡고 있다.

 

영화 중반 이후부터는 다니엘과 엘라이 선데이라는 젊은 종교 지도자 사이의 갈등이 서서히 고조된다. 이 갈등은 단순한 인물 간 충돌이 아니라, 자본주의 대 종교, 탐욕 대 신념, 권력 대 신성함이라는 상징적 대립으로 확장된다. 이 긴장은 마지막까지 끌고 가며, 결국 엔딩에서는 물리적 폭력으로 결말을 맺는다. 영화 마지막, 다니엘은 "나는 내 밀크셰이크를 마셔버렸어"라고 말하며 엘라이를 살해한다. 이 장면은 자본주의가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잔혹한 선언이며, 동시에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파괴적 승부욕의 종말을 보여주는 결정적 클라이맥스다.

 

또한, 영화는 음악과 무성 장면, 카메라 무빙을 통해 고전적 서사와는 다른 리듬을 만들어낸다.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은 불협화음과 불안정한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니엘의 내면 상태와 세계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표현한다. 이런 점에서 『데어 월 비 블러드』는 단순한 스토리 중심의 영화가 아니라, 시청각 언어의 정교한 조합으로 완성된 예술 영화에 가깝다.

 

주요 인물의 심리 묘사 분석

다니엘 플레인뷰(Daniel Plainview) 는 흔히 말하는 '반영웅'의 정수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능력 있는 사업가이자, 전략가이며, 리더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병적일 정도로 타인을 경계하고, 인간 관계를 믿지 않으며, 그 누구와도 진정한 유대감을 맺지 않는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불행한 걸 보면 기분이 좋아"라는 그의 대사는, 그가 어떤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심리 구조는 유년기의 결핍, 사회적 고립, 그리고 인정 욕구의 결핍에서 출발한다. 입양한 아들 H.W.는 그에게 있어 아버지로서의 애정의 대상이라기보다, 신뢰할 수 있는 협상 카드에 가깝다. 하지만 아들이 청력을 잃자, 그는 그를 기숙 학교에 보내버린다. 이는 다니엘이 인간 관계에서 감정이 아닌 효용만을 추구하는 인물임을 보여준다.

 

그는 타인을 신뢰하지 않으며, 경쟁에서 항상 이겨야만 직성이 풀린다. 엘라이와의 관계도 그렇다. 엘라이는 종교라는 이름의 권력을 쥐고 다니엘을 도전하고자 하지만, 다니엘은 이 젊은 목사를 철저히 이용하고, 조롱하며, 결국엔 제거한다. 이는 자본이 종교를 압도하고, 궁극적으로 도덕조차 제거해버리는 구조를 반영한다.

 

다니엘의 심리는 후반으로 갈수록 파괴된다. 그는 돈을 쌓았지만, 친구도, 가족도, 사랑도 없다. 그의 집은 넓지만 공허하며, 대화는 단절되었고, 인간성은 사라졌다. 그는 성공한 자이지만, 철저히 실패한 인간이다. 엘라이를 죽인 후, "이제 끝났다(I'm finished)"는 그의 마지막 대사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상태를 상징한다. 이 대사는 영화 전체의 철학을 집약한다.

 

 

국내외 평단 및 관객 평가

해외 평단은 『데어 월 비 블러드』를 극찬했다. 뉴욕 타임즈, 가디언, BBC, 롤링스톤 등 유수의 매체에서 ‘21세기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꼽았으며,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이 작품으로 예술적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이 작품으로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그의 연기는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완전한 몰입 그 자체로 평가받았다. 그는 촬영 내내 실제 다니엘처럼 생활하며, 모든 감정과 리액션을 직접 체화했다고 한다.

 

미국 내 비평가들은 이 작품을 통해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와 신화의 해체를 읽어냈다. 특히 "개척자 서사"라는 미국적 영웅담의 신화를 비튼 작품으로, 기존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와는 차원이 다른 접근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처음 개봉 당시 대중 관객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렸다. 지나치게 긴 러닝타임, 대사보다 표정과 음악에 의존한 전개, 상징적 인물 묘사 등은 익숙한 플롯을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낯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영화는 시네필들과 평론가들 사이에서 걸작으로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여러 유튜버와 영화 채널에서 줄거리 해석, 인물 분석, 대사 철학 해설 영상이 제작되며 지속적인 관심을 받아왔다.

 

특히 문화연구, 영화이론, 철학 등 학문적 접근에서도 이 영화는 연구 대상이 되었다. 국내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이 작품을 “현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괴물의 초상”으로 규정했으며, 다양한 철학자들도 "다니엘 플레인뷰는 니체적 인간의 파멸된 형상"이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점에서 『데어 월 비 블러드』는 비단 미국의 이야기나 한 개인의 서사가 아닌, 보편적 인간 조건과 현대 사회 구조를 비추는 거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데어 월 비 블러드』는 단순한 시대극이나 인물 중심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욕망, 사회 구조, 철학적 질문을 동시에 껴안은 예술 작품이다. 영화는 줄거리보다 상징, 대사보다 침묵, 성공보다 고립을 말한다. 다니엘 플레인뷰는 우리 안의 자화상이며, 그의 파괴적 성공은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성의 은유다. 이 글을 통해 독자들이 다시금 이 영화를 정독하듯 감상하며, 그 깊은 상징과 미학에 빠져보길 바란다. 지금이라도 『데어 월 비 블러드』를 다시 플레이 해보자. 분명히 첫 감상 때와는 다른 진실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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