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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양 감독의 유작 『하나 그리고 둘』(2000)은 대만 뉴웨이브 영화의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한 가족의 일상을 통해 현대인의 정체성, 소통의 단절, 존재의 의미를 섬세하게 조명한다. 이 영화는 삶을 영화적으로 풀어낸 교과서적인 예로 꼽히며, 단순한 줄거리보다 인물의 내면과 사회적 맥락, 시간의 흐름, 시선의 교차 등을 통해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본 글에서는 이 영화의 스토리 구조, 영상미의 섬세한 연출, 그리고 철학적 의미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관객들이 놓치기 쉬운 깊은 층위의 감상을 안내하고자 한다.
스토리 구조의 특이점과 시간성
『하나 그리고 둘』은 시작부터 일반적인 영화와는 결이 다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중년 남성 NJ가 있지만, 영화는 특정 주인공에만 집중하지 않고 가족 구성원 각자의 삶을 평행하게 서술한다. 마치 소설의 장을 넘기듯 NJ의 아내 민민, 딸 팅팅, 아들 양양, 심지어 외할머니까지 저마다의 시점을 갖는다. 각자의 시점은 조용히 교차하며,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현대 도시의 삶을 펼쳐 보인다.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시간성이다. 영화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시간의 흐름에 맞춰 충실히 따라간다. 시간은 이야기의 배경이자 핵심 주제이며, 관객은 누구의 시점에 있든 “지금 이 순간”의 감정에 몰입하게 된다. NJ는 중년의 회의와 일에 대한 고민, 과거 연인과의 재회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고, 딸 팅팅은 첫사랑과 죄책감 속에서 방황하며, 어린 아들 양양은 관찰자이자 질문자의 역할을 한다. 영화는 이들의 일상을 통해 ‘사는 것’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또한 중요한 사건은 종종 암시로 처리된다. 외할머니의 죽음, 민민의 신경쇠약, 딸의 고백, NJ의 비즈니스 갈등 등은 직접적으로 폭발하지 않는다. 이는 삶의 결정적 순간이 언제나 드라마틱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며, 영화는 감정의 폭발보다 삶의 흐름과 무게를 자연스럽게 반영한다.
영상미와 카메라의 시선
『하나 그리고 둘』의 영상미는 ‘정지된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에드워드 양 감독은 움직이는 카메라보다 정적인 구도를 선호하며, 인물 간 거리감과 공간 배치를 통해 감정의 여백을 표현한다. 카메라는 인물의 뒤를 따라가지 않는다. 오히려 멀찍이서 관찰하듯 담담히 응시하며, 관객이 그 장면에 머무르게 만든다.
예를 들어, 유리문을 사이에 둔 대화 장면, 거울에 비친 얼굴, 엘리베이터 안의 정적, 복도 너머의 모습 등은 단순히 미장센의 완성도를 넘어, 인물 간 ‘보이나 닿지 않는 감정의 거리’를 시각화한다. 특히 양양이 사진을 찍는 장면에서는 이러한 감각이 극대화된다. 그는 ‘사람들이 못 보는 것을 보기 위해’ 사진을 찍으며, 영화의 핵심 주제이자 감독의 철학을 대변하는 인물로 설정된다.
조명은 따뜻한 자연광 위주이며, 대만 도시의 뿌연 공기와 섞여 ‘추억 속의 현재’ 같은 감각을 자아낸다. 인물의 감정이 드러나는 장면에서도 큰 음악이나 클로즈업 없이 조용한 공간 안에 감정을 응축시킨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영화적 몰입감을 오히려 더 높이며, 감상자는 영화 속 인물과 마주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영상의 리듬도 눈여겨볼 만하다. 장면 전환은 느리고, 각 신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전개된다. 이는 삶의 속도에 충실한 연출이며, 관객이 ‘시간을 느끼도록’ 만든다. 에드워드 양은 카메라의 물리적 움직임보다 시선의 철학에 더 집중하며, 이 영화는 그가 보여주고자 했던 ‘삶의 진짜 면모’를 담은 거울과도 같다.
의미 해석과 영화 속 철학
『하나 그리고 둘』의 제목 ‘一一’는 단순히 ‘하나하나’라는 의미를 넘어서, 두 존재의 마주봄과 이중성을 상징한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끊임없이 이 대칭성과 마주보는 구조를 유지한다. NJ와 과거 연인, 딸 팅팅과 이웃 소년, 민민과 어머니, 그리고 어린 양양과 죽음을 앞둔 외할머니까지. 서로를 바라보되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관계 속에서 인간의 본질이 드러난다.
이 영화의 철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에 있다. 양양의 마지막 대사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걸 찍을 수 있을까?”다. 이 말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과 삶의 진실을 포착하려는 시도다. 에드워드 양은 이를 통해 우리 모두가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 속에 삶의 진리가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또한 영화는 현대 사회의 단절과 소통 부재를 정면으로 다룬다. 가족 구성원들은 모두 함께 살고 있지만, 서로의 내면을 알지 못한다. 영화는 이 단절을 통해 현대인의 고독을 상징하며, 진정한 대화는 말보다 시선, 침묵, 그리고 기다림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하나 그리고 둘』은 사랑, 실망, 죽음, 성장 등 모든 감정이 고요한 일상의 일부라는 진실을 담고 있다. 우리는 거대한 사건이 아닌, 사소한 장면과 마주침 속에서 인생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 영화는 그 과정을 정제된 영화 언어로 담아낸 아름다운 철학적 산문이다.
『하나 그리고 둘』은 인생의 복잡한 결을 조용히, 그러나 명료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에드워드 양은 이 영화를 통해 삶의 본질을 깊이 들여다보며, 단절된 시대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을지를 묻는다. 정적인 영상미, 분산된 시점 구조, 철학적 메시지를 통해 이 영화는 관객에게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법’을 제안한다. 영화를 통해 삶을 성찰하고 싶은 이라면, 『하나 그리고 둘』은 반드시 감상해야 할 작품이다.